공유지운동을 이끄는 사람들 ‘솔방울커먼즈’
투기적 도시화 탈피, 함께 만드는 공간이어야
[Landscape Times 김효원 기자] 송현동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대한항공의 대립이 치열하다. 땅 주인인 대한항공은 송현동을 최대한 비싼 가격에 팔고자 하고, 토지용도 결정 권한이 있는 서울시는 송현동을 매입해 공원을 만들고자 한다. 과연 송현동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체는 서울시와 대한항공 이 둘뿐일까. 빠진 사람이 있다. 바로 땅을 이용하게 될 사람들, 바로 시민이다. 솔방울커먼즈는 송현동을 공유지로, 공공의 가치가 피어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연구자와 예술가, 그리고 활동가들이 뭉쳐 만든 시민모임이다. 이들은 ‘솔방울러’라 자칭한다. 모임의 첫 발걸음은 도시계획과 환경을 공부하는 연구자 두 명으로부터 시작했다. 솔방울커먼즈의 연대대표인 최희진·김지혜 연구원은 우연히 송현동을 걷다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이곳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이를 도시 공유지 관점과 연결해보고자 했다. 송현동 부지 “솔이 가득한 언덕, 공동의 것” 솔방울러들을 만나 먼저 ‘솔방울커먼즈’의 뜻에 대해 물었다. “솔방울은 ‘솔이 가득한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송현동을 상징하는 단어고, 커먼즈(commons)는 능동적이고 집단적 활동으로 생산, 유지, 번영하는 공간과 부를 말해요. 송현동이라는 빈 땅을 공동의 땅, 공동의 가치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함께 만드는 모임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솔방울러는 그들이 하는 일에 ‘솔방울하다’라는 신조어를 붙여 정의했다. “'솔방울하다'는 1. 공동이 만들어낸 것의 가치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2. 공동이 만들어 낸 것을 특정 집단이 독점하지 않도록 부대낀다 3. 공동이 만든 것을 공유하기 위해 치댄다 4. 공동이 위아래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로 정의했어요” 정의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단어가 보인다. 바로 ‘공동’이다. 공동의 공간과 자원은 커먼즈 운동의 핵심이기도 하다. 솔방울러는 “소수가 독점하는 공간이 아닌 모두가 함께 만드는 공간, 커먼즈로 이 공간을 다시 상상한다”고 말했다. ⓒ솔방울커먼즈 송현동 투기의 역사 딛고 시민 참여의 ‘공유지’로~ 솔방울커먼즈가 가장 처음 시작한 일은 무엇일까. “기억 속에서 땅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찾고자 했어요” 이들은 먼저 송현동 땅의 역사와 맥락을 추적했다. 송현동의 역사는 근대사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소나무를 공급하는 솔밭이었고, 일제 때는 식산은행, 미군이 들어온 뒤에는 대사관 직원 숙소, 이후 민간 소유(대기업)의 땅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지난 20년 간 송현동은 ‘개발을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땅’이었다. 1997년 삼성생명이 부지를 사들여 개발하려 했고, 실패하자 대한항공이 배턴을 이어받아 호텔을 짓겠다며 땅을 사들였다. 하지만 땅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 및 학교 학습권 침해 등의 이유로 번번이 개발이 무산됐다. 솔방울커먼즈는 “지난 20년간 송현동의 역사는 토지의 상품화의 역사”였다고 말한다. 2008년 대한항공은 2900억을 주고 송현동을 샀고, 현재 땅의 가치는 3배 이상 증가했다. “송현동은 단지 수천 억 원 이상을 지불할 능력을 가진 대기업의 수익 창출에 이용됐어요. 현재 땅을 두고 벌이는 흥정 역시 투기적 도시화와 연장선에 있다고 봅니다” 솔방울커먼즈는 지난 겨울, 이를 비꼬는 전단지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현재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서울시에서 개입해 이 부지를 “적절한” 가격에 팔지 못하게 방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를 공원으로 지정하겠다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5000억 송현동 땅, 2000억에 달란 서울시”와 같은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에는 한국경제에서 서울시에서 4670억 이상에 사겠다는 뉴스를 단독으로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솔방울커먼즈는 이런 현상에 대해 “현재 송현동 숲문화공원 조성에 대한 이야기가 공공성과 관계없이 단순히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방울러는 땅의 자본적 가치만을 논의하기 보다 그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짚어보면서 땅을 사고 파는 것에 대한 의미도 다시 되새겨 봐야 한다고 말한다. 솔방울커먼즈는 ‘사적개발 vs 공적 활용’과 같은 갈등 구도가 아닌 도시의 공공성 차원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송현동’을 이야기 하자 “저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송현동을 함께 알아가고 또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고 싶어요” 솔방울러는 ‘개발과 돈의 논리’가 아닌 ‘삶의 논리’가 적용되는 곳, 소수가 독점하는 곳이 아닌 모두가 함께 만드는 공간으로 송현동을 바꾸길 바란다. 정부와 소수의 이해당사자들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 아닌, 모두가 참여하는 새로운 도시 거버넌스 과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꾸준히 주변의 사람들이 송현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활동해왔다. 송현동 주변을 함께 걷고, 담장 안 나무들이 궁금해 식물 표본을 만들기도 하며, 엽서를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고 송현동에 대한 기사를 써서 올렸다. 지난 6월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주최한 ‘송현동부지에 대한 시민사회 입장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김지혜 솔방울러는 “송현동의 공적 활용은 그 계획 과정과 결과가 서울이라는 도시와 우리 사회 전체에 어떤 효과를 줄 지 고려하면서 진행돼야 한다”고 말하며 송현동 매입과 부지사용 계획에 대해 시민들과 대화하기를 촉구했다. 그리고 지금, 솔방울러는 더욱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다가올 10월 28일(수)부터 11월 1일(일)까지 개최 예정인 ‘솔방울위크’ 전시를 기획 중이다. “송현동에는 주민이 없어요. 동네에는 주민들이 있고, 주민들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송현동에는 땅 주인과 서울시, 정부의 목소리뿐이에요. 주변 주민들을 포함해 서울시민과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함께 얘기하고 싶어요” 솔방울러는 주민센터 개관식 또는 반상회 등의 가상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의 콘셉트를 구상 중이라고 귀띔했다. 솔방울위크는 송현동에 있는 거의 유일한 건물인 ‘송현동 57번지 갤러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한 솔방울러의 사진전시와 함께 문화강좌나 토론과 같은 ‘수다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기획 중에 있다. ⓒ솔방울커먼즈 현재 대한항공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송현동 부지 논란에 대해 ‘중재’를 요청한 상태다. 당분간 서울시와 대한항공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솔방울커먼즈가 바라는 것은 정부와 소수의 이해당사자들이 결정하는 결과물이 아니다. “모두가 참여해 새로운 도시 거버넌스 과정이 되는 것.” 솔방울커먼즈는 송현동을 두고 새로운 방식으로 도시를 설계하고 환경을 계획하는 실험을 계속할 예정이다. [한국조경신문]
김효원 기자 khw92@l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