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동 부지에 대한 커먼즈화 구상을 소개하는 [솔방울커먼즈 시리즈]의 세 번째 글이다. 송현동 부지를 둘러싼 도시계획과정의 틈새를 찾아보고 “주민 됨”을 수행하는 솔방울커먼즈의 활동에 주목한다. 더 나아가 송현동 공간에 작동하는 불균등한 힘의 얽힘을 드러내고, 다양한 연대를 통해 공동의 것(commons)을 위한 상향식 도시계획 모델을 구상해 볼 것을 제안한다.
도시계획 과정에서는 시민 주체가 참여해 도시 공간을 변모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시민참여 방법에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도시기본계획이나 관리계획, 개발계획을 수립하거나 변경할 때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을 수렴하거나 협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뿐만 아니라 주민제안 및 주민투표를 진행하거나 자발적 주민조직과 협력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시민 원탁토론회라는 행사를 앞다투어 개최해 시민과 함께 만드는 도시를 표방한다. 지자체는 토론회를 통해 지역 현안에 대해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하나 여전히 형식적인 참여계획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현재 도시계획 과정은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정보를 전달하고 협의하는 수준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다. 시민 참여는 지자체 주도 하에 짜여진 공론장에 들어서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짜여진 공론장에 틈새를 만들어 내거나 논의하는 장을 새롭게 구성해 낼 수는 없을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며 구체적으로는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부지의 공원화에 대한 도시계획 차원에서 시민참여 과정을 살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송현동 부지를 공동의 것으로 간주하며 끊임없이 참견해 공동의 필요를 말하는 것이다.
지난 6월 서울시 공공개발기획단은 송현동이 포함된 종로구 북촌지구단위 계획 변경안을 공고하였다(서울시보 제2020-1675호). 송현동 부지의 용도를 ‘문화공원’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시정부는 이번 공적개입을 통해 이 부지를 확보하겠다는 강력한 입장을 내보인 것이다. 여기서 절차상 14일 이내 주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송현동 부지의 소유자인 대한항공 측에서는 정부 개입에 반대하며 계획 취소 의견서를 제출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반면에 이번 공고가 나오자마자 종로구 행정동 단위마다 ‘주민자치위원회’, ‘통장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송현동 공원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현수막들이 대거 설치되었다.
한편, 솔방울러1는 이번 계획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여 참여 과정에 목소리를 보탰다. 이들은 이 부지를 공원으로 용도 변경하는 것에 지지하며, 이 부지에 대한 개발 불가능성을 고려한 보상가액을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미 상승된 지대를 보상해주게 된다면 투기의 결과를 정부가 보증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공적매입을 통한 공원화 방식은 도시 내 생태적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공원화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될 수 있는 내재적 위험을 지니고 있다. 단지 송현동 부지를 하나의 공간으로 상정해 녹지화하는 것은 주변 지역의 개발 난립을 야기할 수 있다.
송현동 부지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행위자들은 시정부와 구청과 같이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조직들 그리고 일부 시민단체들이 있다. 이들 시민단체들은 송현동 부지에 대해 자연유산 혹은 역사·문화라는 측면을 강조하며 공공개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들 시민단체와 종로구청은 2018년과 2019년에 시민 토론회와 캠페인을 펼친 바 있으나, 공론의 장으로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합의를 이끄는 데는 부족했다. 구체적으로 작년 여름 종로구청에서 개최한 1차 토론회에서는 일부 전문가를 초청해 송현동의 역사, 문화적 가치에 대해 논하였으며, 작년 가을 2차 토론회에서는 100인 시민의 참여를 신청 받아 사전에 전화로 송현숲 조성에 관해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리고 원탁토론회에서는 “시민이 말하는 송현숲 조성에 따른 예상문제”, “시민이 말하는 송현숲문화공원 기대”, “시민이 말하는 송현숲 조성 집중분야” 등 내용들로 논의를 진행하였다. 당일 행사에 참여한 솔방울러는 도시계획 참여 방식에 대해 몇 가지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우선 평일 오후 낮에 개최된 토론회에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의 한계와 전문가 그룹과 시민 그룹 간 나눠진 영역에 대해 지적하였다. 그리고 “호명된 시민”이 송현동 부지를 어떻게 개발됐으면 좋을지를 논의하는 점에서 피로감을 더했다고 한다. 가령, 이 공론장에서는 구민을 위한 시설 설치 요구와 지가 상승을 유발하는 개발사업 제기 등 민원의 형태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앞서 살펴본 송현동 부지에 대한 공적 사용을 위한 논의는 도시계획의 절차적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논의에서는 1인당 도시숲 면적이나 해외 도시의 공원 현황과 비교하며 분배적 정의 측면에서 송현동에 숲문화공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이들이 도심 공원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효용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작 자원분배의 불평등을 문제 삼거나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힘의 관계와 부당한 구조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송현동 부지는 단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닌 불균등하게 얽혀있는 힘들이 부딪히면서 생성된 공간이다. 이러한 관점에 기반을 둔다면, 송현동 부지를 일 만여 평 규모의 땅으로 제약하기보다 더 많은 공간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여기서 송현동 부지에 대해 소유재와 공공재라는 이분법적 소유 방식에 따른 개발 계획을 지양하고, 다양한 연대를 통해 공동의 것(commons)을 위한 도시계획 모델을 구상해보고자 한다. 다양한 층위의 행위자들이 공동의 부를 만들어가는 과정(commoning)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공론장에서 “시민”으로 초청되어 자리를 부여받았던 것과는 달리, 공동의 부를 만들어 가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커머너(commoner)”가 나타나 발언하고 참여하는 새로운 상향식(bottom-up) 도시계획 모델을 의미한다.
“커머너”로서 송현동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도시계획 과정의 틈에 비집고 들어서는 솔방울커먼즈의 활동을 눈여겨보자. 이들은 이용하고 전유하며 생산 또는 재생산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송현동 부지를 도시 커먼즈로 명명한다. 아울러 솔방울러는 주민 없는 송현동에 “주민 되기”를 수행한다. 10월 한 주간(10.28(수)-11.01(일)) 송현동 57번지 갤러리를 상징적인 주민센터로 꾸며 “송현주민”의 무대를 만든다. 송현동주민센터는 기존 행정체계 안에 이뤄지는 사무 기능과 서비스 제공의 역할과는 사뭇 다르다. 첫째 날(수요일) 환영식과 초대전시를 진행한 후에,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마다 수다마당을 열어 송현 땅에 대한 역사와 기억, 쟁투의 과정을 토론한다. 그리고 주말엔 송현계모임을 제안하며 춤과 노래가 어울린 축제를 펼친다. 한 주간 축제의 장은 여러 송현주민이 오가며 그동안 송현동에 잠재해 있던 흥성흥성한 분위기를 돋우어 낼 것이다.
솔방울커먼즈에는 연구하고 활동하고 예술하는 사람들(이하 솔방울러)이 모여 있다. ↩
솔방울커먼즈-최희진
젠더, 공간, 커먼즈에 대해 배우며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솔방울커먼즈에서 활동-연구하고 아시아도시사회센터에서 연구-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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