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면서 도시의 땅을 공동의 것으로 회복하려는 솔방울커먼즈를 소개한다. 숫자로 환원되고 있는 도시의 땅을 몸으로 디디면서 솔방울커먼즈는 공동의 것에 대한 역사를 추적하고, 공동의 것을 만들기 위해 활동한다. 앞으로 4회에 걸친 [솔방울커먼즈 시리즈]를 통해 송현동 한진그룹 소유지에 대한 커먼즈화 구상을 소개하고, 활동가로서 느끼는 단상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솔방울커먼즈는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의 한진그룹 소유지를 중심으로 커먼즈(commons)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이들의 모임이다. 공유지, 공동자원, 공통계 등으로 번역되는 커먼즈는 능동적이고 집단적인 활동으로 인해 생산·유지되고 번영하는 공간과 사물, 지식, 부(富) 등을 통칭한다. 솔방울커먼즈가 문제화하는 송현동 한진그룹 소유지는 일제강점기에 식산은행의 사택으로, 해방이후에는 미국 대사관 사택으로 이용되었던 땅이다. 1997년, 삼성생명이 매입하였다가 개발 실패로 한진그룹에 매각하였다. 한진그룹의 개발 계획도 학교보건법 등의 이유로 제한받았고, 현재 송현동은 담장에 둘러싸여 접근할 수 없는 땅으로 남아있다. 최근 서울시와 종로구는 이를 매입하여 공원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솔방울커먼즈는 이 땅의 문제가 정부의 매입으로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밝히면서, 송현동의 커먼즈화를 구상한다.
콘 저, 차은정 역, 2018, 숲은 생각한다, 사월의책(Kohn, E., 2013, How Forests Think,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던 경험을 글로 적으면서 ‘땅을 딛는(grounding) 감각’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파파약타를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폭우로 인한 산사태를 맞았다. ……. 이러저러한 위험한 시나리오가 내 머리 속에서 도저히 멈춰지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나의 신체와 주변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느꼈다. ……. 나는 그곳의 관목덤불에서 먹이를 찾는 풍금조 한 마리를 발견했다. 쌍안경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여기저리 두리번거려 그 새의 위치를 찾아냈다. 새에 초점을 맞추고 쌍안경의 손잡이를 돌려 새의 두터운 검은 주둥이를 렌즈에 선명하게 잡는 순간 나는 갑작스런 어떤 변화를 맞이했다. 분리의 감각이 불현듯 사라졌다. 그리고 렌즈 속의 풍금조처럼 나는 생명의 세계로 되돌아왔다. ……. 풍금조가 렌즈에 선명하게 드러난 순간 나의 불안한 소외감은 사라졌다.(콘, 2018:87-92)”
콘은 소외감이 사라진 순간을 ‘다시 땅을 딛는 것’으로 표현한다. 물론 여기서 땅을 딛는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땅을 딛는 것은 불안으로 부유하는 사고가 더 큰 세계의 시공간에 통합되어 안정감을 찾는 순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은유가 땅 딛기로 표현됨은 우연이 아니다. 발에 땅을 붙이고 있는 감각을 오롯이 느낄 때 부유하던 것들은 땅에 내려앉으며 몸은 힘으로 가득 찬다. 걷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땅을 다시 딛게 되는 경험으로, 분리되어 있는 개별보다 더 큰 존재와 만나는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시는 땅을 딛기 어려운 곳임은 분명하다. 도시의 땅은 숫자로 추상화되어 있다. 땅은 몸으로 감각되지 않고, 돈으로 환원되어야만 비로소 제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는 듯이 평가된다. 우리는 땅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 이 땅이 평당 얼마짜리인지 알아야만 땅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숫자를 들었을 때에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동그랗게 뜨게 된다. 돈이 물신주의의 표상이라고 하던가? 도시의 땅은 오히려 반대를 말한다. 땅은 돈을 물신화한 것뿐이다. 땅이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땅값을 받을 수 없다면, 땅에서 숨 쉬고 있는 삶들이 다 무슨 의미겠는가? 땅은 이제 돈의 표상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솔방울커머너들은 돈으로 환원되는 땅 너머에 있는 땅을 사유한다. 숫자의 땅 대신에 딛을 수 있는 땅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한다. 요컨대 솔방울커먼즈는 고도로 추상화된 도시 속에서 땅을 딛는 감각을 다시 찾아나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솔방울하다’라는 새로운 개념은 솔방울커먼즈의 지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솔방울하다’는 공동이 만들어낸 것들의 가치를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것으로, 소수가 이것을 독점하지 않도록 부대끼고 공유하기 위해 치대는 것으로, 위아래 없이 공동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정의된다. 공동의 것들 중에 우선은 땅, 도시의 땅이다.
솔방울커머너들 몇 명이 모여 솔방울언덕이라는 유래의 서울 종로구 송현동 00번지 땅 주변을 함께 걷는다. 이 땅은 조선시대 세도가의 땅, 식산은행의 땅, 미국 정부의 땅이었다가 대기업들의 땅이 되었다. 만 평이 넘는 땅은 온갖 소문만 무성한 채 담장에 둘러싸여있다. 인사동 거리와 경복궁이 맞은편에 있는 이 땅 주변에는 조그마한 상점들과 카페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잔디밭과도 이어져있다. 움직임이 넘쳐나는 담장 밖과는 달리 담장 안의 소리는 넘어오지 않는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을 지키는 경비원과 방치되어 자라나고 있는 식물들의 스산한 흔들림 정도가 담장 안에 있으리라고 상상한다.
그래서 송현동 00번지를 ‘솔방울해버리자’는 솔방울커머너들의 이야기는 걷지 못하는 땅의 문을 열어 걸어보려는 환상과 함께한다. 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숫자를 움직이게 만들고, 숫자를 불리게 만들고, 그래서 다시 숫자의 땅을 만드는 것을 지켜볼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수다나 떨다 간다. 그 환상 속에서 땅은 살아난다. 담장은 허물어지고, 우리는 자유롭게 땅을 지나다닌다.
솔방울커머너들은 담장 안에 있는 나무의 안녕을 궁금해 하다가 식물 표본을 만들어 보고, 땅투기 광고를 비꼬는 패러디물을 담장에 붙이고, 근처 높은 건물에 올라 담장 안을 구경하기도 한다. 엽서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송현동에 대한 기사도 쓴다. 도대체 무슨 일을 기획하고 있는 것인지 솔방울커머너 자신들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솔방울커머너들이 바라는 일은 뚜렷하다. ‘솔방울하면서’, 우리가, 가능한 우리 모두가 문이 열린 땅을 딛고 걸을 수 있길 바란다. 이때 문을 여는 방식과 열려지고 난 뒤의 방식이 지금의 관행과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의 것들이 함께 땅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땅에 대한 제도와 계획도 바뀌어야 한다.
송현동을 통해서 솔방울커먼즈는 도시의 존재 방식을 묻는다. 땅의 역사가 소수의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 얼룩져 있다면, 공동의 것으로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땅을 돌려받을 때, 소수가 행한 투기의 결과를 보상해 주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공동이 땅을 사용하는 것이 또 다시 투기의 역사를 보증하는 ‘숲세권’과 ‘문세권’으로 활용되는 것은 괜찮을까? 공유지로서 땅을 만드는 것이 삶을 위협하는 반-생태적인 개발로부터 벗어나 생태적인 전환의 계기를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어떻게 땅을 통해서 많은 이들의 삶이 진실로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도시의 땅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솔방울커머너들은 함께 땅을 디디면서 이 질문들의 구체적인 답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공동의 힘은 관망하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래서 솔방울커먼즈를 조직하고, 위계 없는 상상의 지대를 현실에 구현해 낸다.
솔방울커먼즈-졔졔
솔방울커먼즈에서 활동하고 있는 졔졔입니다. 환경계획을 전공하고 있으며 인간과 사물, 과학과 생태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솔방울커먼즈와 함께하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언제나 환영합니다.
출처-2020 생태적지혜 미디어